절망을 그리는, 정인태 작가

정릉동과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고향은 경북 구미이고,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왔어요. 처음 거주한 곳은 형이 다니던 학교 근처인 신촌이었어요. 그 후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학교 근처인 정릉동으로 이사를 온지 4년이 되었어요. 작년에 학교를 졸업해서 옮겨야하나 생각도 했지만 4년 정도 살다 보니까 정릉동에 정이 들었네요.

 

개인 작업을 한다고 들었어요. 요즘 하시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제가 하는 작업은 조금 어렵고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작업 주제가 절망이거든요. 주로 회화작업으로 표현해요. 절망에 대한 작업을 한 지는 꽤 오래되었어요. 대학교 3, 4학년 때부터였는데, 그땐 힐링이라는 키워드가 한창 유행이었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이 히트할 때이기도 했고요. 왜 절망에 꽂히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고등학교 시절에 자기계발서를 보면서 회의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조용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자기계발서를 보면 긍정적으로 성격을 바꾸고 활달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라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얼마 전 유행했던 힐링도 삶에 대해 고민을 더 하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게 살라고 권하는데 그런 성격의 장점만 늘어놓으면서 바꾸라는건 좀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혼자 책을 찾아보면서 공부도 하고 고민도 하면서 과연 생각 없이 이대로 힐링해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했어요. 그러던 중에 키르케고르의 책을 읽었는데 절망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에는 3가지 경우가 있다고 말해요 첫째는 절망적인데 절망인 것을 깨닫지 못할 때, 둘째는 절망인데 절망에 빠진 것을 부정하려고 할 때, 셋째 절망하여 절망 속에서 빠져 지낼 때. 단순히 절망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 깊게 연관되어 있고, 오히려 희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저는 절망에 빠지는 것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요. 더욱 더 자기 자신을 철저히 반성하고, 개선해 나갈 여지를 주는 것이 절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계속 절망에 대해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절망의 파편들 15x15cm acrylic on mdf 2013
절망의 파편들 15x15cm acrylic on mdf 2013

 

인태씨의 작품을 보는 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기대가 있을까요?

제 작업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관객이 스스로 느끼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한국사람들은 대개 절망에 대해 막연하게 부정적이고 극복해야 하는 무언가라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 생각을 깨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누구나 절망에 부딪힐 수 있고 절망을 겪게 되는데 그 절망 속에서 무엇을 깨닫느냐가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사람들의 피드백 중에 인상깊었던 것이 있다면요?

사실 제가 하도 절망, 절망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까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마저도 항상 왜 넌 절망이냐, 이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냐라고 많이 이야기해요. 쉽게 벗어날 생각은 당연히 없어요. (웃음)

 

개인작업 뿐만아니라 지역에서 주최하는 문화예술 행사에 많이 참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성북구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교육한 캘리그라피 수업을 들었어요. 교육이 끝나고도 함께 수업을 들은 사람들과 동아리 모임을 해요. 최근에는 동아리 모임에 잘 못 나가고 있지만, 작년과 올해 성북천에서 열린 캘리그라피 깃발전에도 참여했어요. 정릉시장에서 주최하는 개울장에 캘리그라피와 작은 소품을 파는 판매자로도 참여했었고요. 얼마 전에는 성북진경 프로그램에 참여해 아이들과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요즘은 정릉예술마을 만들기의 한 프로그램인 ‘늦밥’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캘리그라피 작업의 글귀 역시 절망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나요?

캘리그라피 역시 제가 생각하는 것을 담고 있다 보니 그런 편이에요. 그림과 다르게 제 생각을 텍스트로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보는 사람들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

정인태_가을
정인태_가을

 

혼자 있는것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하셨는데, 예술을 매개로 지역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는 적극적이신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림은 제가 만족할 때까지 그리는 것이긴 하지만, 타인에게 보여줌으로써 서로간의 교감을 일으키는 데에 목적이 있잖아요. 저는 전시를 하면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고민을 나누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되요. 제가 예술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정릉예술마을만들기 프로그램 중 ‘늦밥’모임에 거의 매주 참석하신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참석하게 되셨나요?

여섯 번 중에 한 번 빼고 다 참석했어요. ‘늦밥’을 담당하는 이정미씨와 성북진경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연극과 캘리를 접목한 한글 프로그램 교육을 했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 다 정릉주민인 것을 알게되고, 그래서 저를 ‘늦밥’에 초대해주셨어요. 처음 참석하는 분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런 모임에 과연 누가 올까? 와서 뭘 하지?’ 하는 생각이요. 수요일이 일주일의 중간이잖아요. 중간에 휴식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 만나면서 공감대를 찾아가고 하는 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공감대와 ‘자취생’이라는 공감대도 있고요. 서울생활이라는 공감대가 역시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사실 밥이 맛있기도 했고요.

늦은저녁, 합께 먹는 늦밥(사진_늦밥 페이스북)
늦은저녁, 합께 먹는 늦밥(사진_늦밥 페이스북)

 

정릉에 사는 주민으로 바라보는 정릉은 어떤가요?

신촌에서 정릉동으로 학교를 다닐 때에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다가 잠들어서 정릉동 안쪽까지 들어간 적이 있어요. 정릉은 신촌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한적하고 시골 같이 정감가는 분위기가 있어요. 고향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작은 동네인데도 있을 건 다 있거든요. 살다 보니 불편한 건 별로 없어요. 버스 종점이 근처다 보니까 버스도 늦게까지 있고 좋은 것 같아요. 일하러 간다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는 조금 멀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예술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예술은 소통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것을 예술가가 먼저 나서서 시도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정릉예술마을이란 어떤 마을일까요? 혹은 예술마을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요?

지금 이런 인터뷰 같은 시도도 좋은 것 같아요. 성북의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하면서 이 지역에 활동하시는 예술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실 저처럼 성격이 적극적이지 않은 예술가들은 누가 불러주지 않으면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르기 때문에, 참여하면서 이 지역에 예술적으로 뭐가 필요한지 듣기도 하고 협력지점을 찾기도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늦밥’ 참여하고 하면서 제 작업에 관해 이야기 하기도 하고 다음 주 마지막 모임에는 제 그림을 설치하고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도 하기로 했어요. 이런 식으로 연계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긴다면 예술가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섯 일곱 명 정도 같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인터뷰_2015/10/26>